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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야율아보기. 하북성 난하 상류 청더시 롼핑현의 한성漢城에 도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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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란 야율아보기. 하북성 난하 상류 청더시 롼핑현의 한성漢城에 도읍하다. 한성漢城의 위치 //오대사 거란전 사료 한성(漢城)에 도읍한 야율아보기 아보기(阿保機) 또한 그가 어느 부락 사람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의] 사람됨은 지혜와 용맹함이 많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 당시 유수광(劉守光) 주 001은 폭정을 일삼고 잔혹하여 유[주](幽州)와 탁[주](涿州) 주 002 사람들이 많이들 거란(契丹)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아보기가 이 틈을 타고 변경으로 들어가 성읍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그 백성[人民]들을 사로잡아 당(唐)의 주현(州縣)을 본따 성(城)을 설치하여 [그들을] 살게 했다. 한인(漢人)들이 아보기에게 충고하여 말하기를, “중국의 왕은 [다른 사람의 지위를] 대신 이어받아 즉위한 자가 없었소.”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아보기는 더욱 더 여러 부락[諸部]을 위협하고 통제해 기꺼이 [그 지위를 다른 사람이] 이어받지 못하게 했다. 그가 즉위한 지 9년째에, 여러 부락[의 대인들]이 그가 오랫동안 [그 지위에] 있어 [다른 사람이] 이어받지 못하자 모두 그를 책망했다. 아보기(阿保機)가 어쩔 수 없어 그의 깃발과 북을 전하고 여러 부락에 일러 말하기를, “내가 즉위한 지 9년으로 한인을 얻은 바가 많으니, 내가 직접 [이들을] 하나의 부락으로 삼아 한성(漢城) 주 003을 다스리고자 하는데 가능하겠는가?”라고 하자 여러 부락이 이를 허락하였다. 한성은 탄산(炭山) 주 004의 동남쪽 난하(灤河) 상류에 있는데 염철(鹽鐵)[에서 얻는] 이득이 있었고 곧 [이 일대는] 후위(後魏) 때에는 활염현(滑鹽縣)이었다. 그 땅에는 오곡(五穀)을 심을 수 있어 아보기는 한인을 거느리고 농사를 지었고 성곽(城郭)과 읍옥(邑屋), 무역시장[廛市]을 만들어 다스리기를 [당이] 유주(幽州)[를 다스리는] 제도와 같게 하니 한인들이 편안해 하며 다시 [당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보기는 무리를 기용할 수 있음을 알고 그[의] 처 술률(述律) 주 005이 낸 ...

거란 야율아보기가 거란 제국을 세운 비결 중 하나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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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란 야율아보기가 거란 제국을 세운 비결 중 하나 소금  ​  "아보기는 무리를 기용할 수 있음을 알고 그[의] 처 술률(述律) 주 005이 낸 책략을 사용하여 사람을 시켜 여러 부락의 대인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에게는 염지(鹽池)가 있어 [거기서 나는 소금을] 여러 부락이 먹는다. 그런데 여러 부락[의 대인들]은 식용 소금[食鹽]의 이익은 알면서도 소금에 주인이 있음은 알지 못하니 가능한 일인가? 의당 와서 나에게 음식을 베풀어 위로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러 부락의 대인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모두 소와 술을 [갖고] 염지에 모였다. " ​ _오대사 거란전 (번역 : 동북아역사넷) ​ ​ ​ 야율아보기가 세력을 떨친 하북성 난하 상류 유역은 시라무렌하의 상류 근처로 그 곳 근처에 큰 소금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 ​ ​ 광개토비를 보면 광개토는 거란의 조상인 비려를 정복하고 비려가 사는 그 시라무렌하 상류 근처의 소금 호수를 확보해서 소금 자원을 장악함. ​ 광개토는 이걸 기반으로 해서 사방을 막 두드려패서 거대한 천손의 나라 대고려를 세움. ​ ​ ​ 거란은 국호를 요수遼水 강물의 요遼 에서 따서 국호를 요遼라고 하고 고구려 계승을 천명하고 ​ 자기들이 정복한 요동의 요양성을 동쪽 도읍이란 뜻에서 동경東京이라 칭함. ​ ​ ​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 후, 발해 백성들을 끌어다가 요서,요동으로 막 강제 이사 시켰다고 한다. 기록들 보면 그렇게 나온대. ​ ​ ​ 그리고 요나라의 역사와 지리 등등 모든걸 적은 [요사]에서 요사 지리지 동경 요양부 편을 보면 본래 거란은 북한 평양을 자기들의 동경으로 삼으려했던거같다.  ​ 근데 고려 왕건,왕식렴의 북방 진출 때문에 포기하고 그냥 요동에 동경을 둔거같다. ​ 근데 이걸 매우 모호하게 적어서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수없는데. 기록이 적혀진게 무슨 [요동 요양= 고구려 수도 평양] 이 따위로 적혀져있는 느낌이라서  ​ 훗날 이덕일,복기대가 이 ...

거란의 중원 정벌 기록

 거란의 중원 정벌 기록 "연수(延壽)는 후진이 쇠락하고 천하에 난리가 난 것을 보고 일찍이 중국을 엿볼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덕광(德光) 또한 일찍이 연수가 후진을 멸하고 자립하려는 것을 허락했다. 연수는 후진의 서신을 받게 되자 거짓으로 좋은 말로 후진[의 서신]에 답하여 자신은 거란[虜]을 무너뜨리고 돌아갈 생각이라 말했고, 후진은 병사를 징발해 호응할 것을 약속했다. 덕광(德光)의 장수인 고모한(高牟翰) 주 001 또한 허위로 영주(瀛州) 주 002를 [들어] 후진에 항복하니 후진의 군신(君臣) 모두가 기뻐했다. [개운] 3년(946) 7월, 두중위(杜重威)·이수정(李守貞)·장언택(張彥澤) 등을 보내 출병(出兵)하여 연수에게 호응하게 하여 병사들이 영주(瀛州)로 달려갔으나 모한(牟翰)은 성을 비우고 도망가버렸다. 후진의 군대가 성 주위에 도달해 성문이 모두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복병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여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양한장(梁漢璋)을 보내 모한을 추격해 그에게 미치게 했으나 한장(漢璋)이 전사(戰死)했다. 중위 등의 군대는 무강(武強)에 주둔하였다. 덕광은 후진이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진주(鎭州)로 쳐들어갔다. 중위는 서쪽으로 중도(中渡) 주 003에 주둔하여 덕광과는 하천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덕광은 병사를 나누어 함께 서산(西山)으로 [가서] 후진 군대의 후방으로[부터] 나가 난성현(欒城縣) 주 004을 공격해 물리쳤는데 현(縣)에는 기병[騎軍]주 005 천 명이 있었으나 모두 거란에 항복하였다. 덕광(德光)은 매번 후진 사람들을 획득하면 그들의 얼굴을 [칼로] 찌르고 문구를 [새겨 넣어] “칙을 받들어 죽이지는 않는다.”라고 하고 [이들을] 풀어주어 남쪽으로 돌아가게 했다. 중위 등은 포위되어 식량 [공급]이 끊어지자 마침내 군사를 들어 항복했다. 덕광이 기뻐하며 조연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전투에서] 획득한 한인[漢兒]을 모두 그대에게 주노라.”라고 하며 용봉(龍鳳) [무늬가 새겨진] 붉은색 겉옷[赭袍]...

부여의 왕이 되었다가 후당으로 도주한 요나라 태자 돌욕

 하룻밤에 읽는 요나라 역사 부여의 왕이 되었다가 후당으로 도주한 요나라 태자 돌욕 "처음에 아보기(阿保機)가 죽자 첫째 아들인 동란왕(東丹王) 돌욕(突欲)이 마땅히 즉위해야 했으나 그의 어머니 술률(述律)이 그녀의 어린 아들인 안서소군(安端少君)을 보내 부여(夫餘)로 가서 그의 [지위를] 이어받게 하고 [그를] 세워 후계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술률은 덕광(德光)을 특히 총애했다. 덕광에게는 지략과 용맹함이 있어 평소 이미 여러 부락을 복속시켰는데 안서(安端)가 [부여로] 가버리자 여러 부락이 술률의 뜻대로 함께 덕광을 세웠다. 돌욕은 즉위할 수 없게 되자 장흥(長興) 원년(930), 부여로부터 바다를 건너 후당으로 도망쳤다. 명종(明宗)이 그리하여 그에게 성을 하사해 동란(東丹)이라 하고 그의 이름을 바꿔 모화(慕華)라 했다. 그가 요동(遼東)으로부터 오자 곧 서주(瑞州) 주 001를 회화군(懷化軍)이라 하고 모화에게 회화군절도사(懷化軍節度)·서신등주관찰처치사(瑞愼等州觀察處置使)주 002 등의 사직[使]을 제수했다. 그의 부곡(部曲) 다섯 명에게도 모두 성과 이름을 하사했는데, 한지(罕只)는 한우통(罕友通)이라 하고 목갈(穆葛)은 목순의(穆順義)라 하고 철라(撒羅)는 나빈덕(羅賓德)이라 하고 역밀(易密)은 역사인(易師仁)이라 하고 개례(蓋禮)는 개래빈(蓋來賓)이라 하여 귀화(歸化)·귀덕장군낭장(歸德將軍郎將)으로 삼았다. 또 전에 부획했던 혁모(赫邈)에게는 성과 이름을 하사해 적회혜(狄懷惠)라 하고 자렬(抯列)은 열지은(列知恩)이라 하고 즉랄(萴剌)은 원지감(原知感)이라 하고 복랑(福郎)은 복회조(服懷造)라 하고 갈실기(竭失記)는 을회유(乙懷宥)라 하였다. 그 나머지 [중] ‘거란직(契丹直)’으로 삼은 자에게도 모두 성과 이름을 하사했다. [장흥] 2년(931), 돌욕의 성을 이씨(李氏)로 바꿔 하사하고 그의 이름을 바꿔 찬화(贊華)라 했다. [장흥] 3년(932), 찬화를 의성군(義成軍)주 003절도사(節度使)로 삼았다. 初, 阿保機死, 長子東丹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