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왕이 되었다가 후당으로 도주한 요나라 태자 돌욕
하룻밤에 읽는 요나라 역사
부여의 왕이 되었다가 후당으로 도주한 요나라 태자 돌욕
"처음에 아보기(阿保機)가 죽자 첫째 아들인 동란왕(東丹王) 돌욕(突欲)이 마땅히 즉위해야 했으나
그의 어머니 술률(述律)이 그녀의 어린 아들인 안서소군(安端少君)을 보내 부여(夫餘)로 가서 그의 [지위를] 이어받게 하고 [그를] 세워
후계로 삼고자 했다. 그런데 술률은 덕광(德光)을 특히 총애했다. 덕광에게는 지략과 용맹함이 있어
평소 이미 여러 부락을 복속시켰는데 안서(安端)가 [부여로] 가버리자 여러 부락이 술률의 뜻대로 함께 덕광을 세웠다.
돌욕은 즉위할 수 없게 되자 장흥(長興) 원년(930), 부여로부터 바다를 건너 후당으로 도망쳤다.
명종(明宗)이 그리하여 그에게 성을 하사해 동란(東丹)이라 하고 그의 이름을 바꿔 모화(慕華)라 했다.
그가 요동(遼東)으로부터 오자 곧 서주(瑞州) 주 001를 회화군(懷化軍)이라 하고
모화에게 회화군절도사(懷化軍節度)·서신등주관찰처치사(瑞愼等州觀察處置使)주 002 등의 사직[使]을 제수했다.
그의 부곡(部曲) 다섯 명에게도 모두 성과 이름을 하사했는데, 한지(罕只)는 한우통(罕友通)이라 하고 목갈(穆葛)은 목순의(穆順義)라 하고 철라(撒羅)는 나빈덕(羅賓德)이라 하고 역밀(易密)은 역사인(易師仁)이라 하고 개례(蓋禮)는 개래빈(蓋來賓)이라 하여 귀화(歸化)·귀덕장군낭장(歸德將軍郎將)으로 삼았다. 또 전에 부획했던 혁모(赫邈)에게는 성과 이름을 하사해 적회혜(狄懷惠)라 하고 자렬(抯列)은 열지은(列知恩)이라 하고 즉랄(萴剌)은 원지감(原知感)이라 하고 복랑(福郎)은 복회조(服懷造)라 하고 갈실기(竭失記)는 을회유(乙懷宥)라 하였다. 그 나머지 [중] ‘거란직(契丹直)’으로 삼은 자에게도 모두 성과 이름을 하사했다.
[장흥] 2년(931), 돌욕의 성을 이씨(李氏)로 바꿔 하사하고 그의 이름을 바꿔 찬화(贊華)라 했다. [장흥] 3년(932), 찬화를 의성군(義成軍)주 003절도사(節度使)로 삼았다.
初, 阿保機死, 長子東丹王突欲當立, 其母述律遣其幼子安端少君之扶餘代之, 將立以爲嗣. 然述律尤愛德光. 德光有智勇, 素已服其諸部, 安端已去, 而諸部希述律意, 共立德光. 突欲不得立, 長興元年, 自扶餘泛海奔于唐. 明宗因賜其姓爲東丹, 而更其名曰慕華. 以其來自遼東, 乃以瑞州爲懷化軍, 拜慕華懷化軍節度·瑞愼等州觀察處置等使. 其部曲五人皆賜姓名, 罕只曰罕友通 주 001, 穆葛 주 002曰穆順義, 撒羅 주 003曰羅賓德, 易密 주 004曰易師仁, 蓋禮 주 005曰蓋來賓, 以爲歸化·歸德將軍郎將. 又賜前所獲赫邈姓名曰狄懷惠 주 006, 抯列 주 007曰列知恩 주 008, 萴剌曰原知感, 福郎曰服懷造, 竭失記 주 009曰乙懷宥 주 010. 其餘爲「契丹直」者, 皆賜姓名. 二年, 更賜突欲姓李, 更其名曰贊華. 三年, 以贊華爲義成軍節度使.
"_오대사 거란전
아보기 : 컥 나 죽는다
부여 왕 돌욕 : 음 이제 내가 요나라의 왕이 되겠군. 이제 이 추운 부여 땅 지긋지긋하구나
엄마 술률 : 어림없는 소리.
왕자 안서소군 : 형님. 어머니가 날 보냈소. 부여 왕 자리 내놔라
돌욕 : 헉 이런 .... 이이...
엄마 술률 : 덕광이 니가 요나라 왕이 되거라
덕광 : 당연하죠 제가 지략과 용맹이 있는걸요
돌욕 : 끙 시발 요동으로 도피하자
돌욕 : 끙 배 타고 군자의 나라 후당으로 가자. 난 이제 중화를 사모하겠다. 중국몽 얍!
후당 명종 : 껄껄 이제부터 자네 이름은 모화일세. 산동반도 사또직을 제수해주지.
돌욕 : 헉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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