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중원 정벌 기록

 거란의 중원 정벌 기록



"연수(延壽)는 후진이 쇠락하고 천하에 난리가 난 것을 보고 일찍이 중국을 엿볼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덕광(德光) 또한 일찍이 연수가 후진을 멸하고 자립하려는 것을 허락했다. 연수는 후진의 서신을 받게 되자 거짓으로 좋은 말로 후진[의 서신]에 답하여 자신은 거란[虜]을 무너뜨리고 돌아갈 생각이라 말했고, 후진은 병사를 징발해 호응할 것을 약속했다. 덕광(德光)의 장수인 고모한(高牟翰) 주 001 또한 허위로 영주(瀛州) 주 002를 [들어] 후진에 항복하니 후진의 군신(君臣) 모두가 기뻐했다.


[개운] 3년(946) 7월, 두중위(杜重威)·이수정(李守貞)·장언택(張彥澤) 등을 보내 출병(出兵)하여 연수에게 호응하게 하여 병사들이 영주(瀛州)로 달려갔으나 모한(牟翰)은 성을 비우고 도망가버렸다. 후진의 군대가 성 주위에 도달해 성문이 모두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복병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여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양한장(梁漢璋)을 보내 모한을 추격해 그에게 미치게 했으나 한장(漢璋)이 전사(戰死)했다. 중위 등의 군대는 무강(武強)에 주둔하였다. 덕광은 후진이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진주(鎭州)로 쳐들어갔다. 중위는 서쪽으로 중도(中渡) 주 003에 주둔하여 덕광과는 하천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덕광은 병사를 나누어 함께 서산(西山)으로 [가서] 후진 군대의 후방으로[부터] 나가 난성현(欒城縣) 주 004을 공격해 물리쳤는데 현(縣)에는 기병[騎軍]주 005 천 명이 있었으나 모두 거란에 항복하였다.


덕광(德光)은 매번 후진 사람들을 획득하면 그들의 얼굴을 [칼로] 찌르고 문구를 [새겨 넣어] “칙을 받들어 죽이지는 않는다.”라고 하고 [이들을] 풀어주어 남쪽으로 돌아가게 했다. 중위 등은 포위되어 식량 [공급]이 끊어지자 마침내 군사를 들어 항복했다. 덕광이 기뻐하며 조연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전투에서] 획득한 한인[漢兒]을 모두 그대에게 주노라.”라고 하며 용봉(龍鳳) [무늬가 새겨진] 붉은색 겉옷[赭袍]을 그에게 하사하고 [그] 옷을 입고 후진의 군대를 위무(慰撫)하게 했고 또한 붉은 색 겉옷을 중위에게도 하사했다. 부주아(傅住兒)를 보내 장언택(張彥澤)이 기병 이천 [명]을 통솔하는 것을 감독하게 하고 먼저 경사로 들어갔다. 후진의 출제는 태후(太后)에게 항복의 [뜻을 적은] 표를 올리고 자신의 허물에 대해 밝혔다. 덕광(德光)이 해리(解里)를 보내 친필 조서[手詔]를 제(帝)에게 하사하며 말하기를, “손자[孫兒]야 부질없이 근심하지 말라, 한 끼 밥을 먹을 곳만 취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덕광이 장차 경사에 도달하자 유사(有司)가 법가(法駕)로써 [그를] 받들어 맞이하기를 청했으나 덕광은 말하기를, “나는 몸소 갑옷과 투구[甲冑]를 입고 중원(中原)을 평정했는데 태상(太常)[에서 행하는] 의례를 한가로이 생각할 여력은 없다.”라고 하면서 끝내 행하지 않았다. 출제가 태후와 함께 교외(郊外)로 나가 [그를] 받들어 맞이하려 했으나 덕광은 사양하며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말하기를, “어찌 두 [명의] 천자가 도로에서 서로 만나 보겠는가!”라고 하였다.


[개운] 4년(947) 정월 정해(丁亥) 보름 날 아침에, 후진의 문무백관(文武百官)이 도성(都城) 북쪽에 차례로 늘어서 제(帝)를 바라보고 삼가 공손히 물러났는데 [이들은] 소복(素服)[을 입고] 견으로 만든 모자[紗帽]를 갖추어 썼다. 덕광(德光)이 갑옷과 담비털로 만든 모자[貂帽]를 쓰고 높은 산등성이에 말을 세우자 백관이 엎드려 대죄(待罪)하였다.주 006 덕광이 봉구문(封丘門) 주 007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가 성루(城樓)에 오른 뒤 통사(通事)주 008를 보내 무리에게 널리 선언하여 말하기를, “나 또한 사람이니 가히 두려움이 없을 수 있겠느냐. 나는 본래 여기에 도달할 마음이 없었는데 한(漢)의 병사들이 나를 이끌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마침내 진궁(晉宮)으로 들어갔다. 궁 안의 비빈과 기녀[嬪妓]가 [그를] 맞이해 알현했으나 모두 돌아보지 않고 저녁이 되자 [궁을] 나가 적강(赤岡) 주 009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출제를 부의후(負義侯)에 봉하고 [그의 거처를] 황룡부(黃龍府) 주 010로 옮겼다. 계사(癸巳) 일에, 진궁(晉宮)으로 들어가 거처했는데 거란(契丹) 사람들에게 여러 [성]문을 지키게 하고 문의 지붕과 전정(殿廷)에는 모두 개의 가죽을 찢어서 걸쳐 놓아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승리를 거두었음[猒勝]을 보이게 했다.


갑오(甲午) 날에 덕광(德光)이 호복(胡服)을 입고 광정전(廣政殿)주 011에서 조회를 주관하였다. 을미(乙未) 날에는 중국(中國)의 관복(冠服)을 입고 백관(百官)이 행하는 배례(拜禮)에 참여했고 기거(起居)는 후진의 의례[晉儀]와 같이 하였으나 이적의 의복[氈裘左袵]주 012과 호마(胡馬)와 해의 수레[奚車]를 궁전의 섬돌[階陛]에 늘어놓으니 후진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감히 우러러 보지 못했다.


2월 정사(丁巳) 보름 날에, 금오육군(金吾六軍)·전중성장(殿中省仗)·태상악무(太常樂舞)가 조정에 늘어서니 덕광(德光)이 통천관(通天冠)주 013을 쓰고 진홍색의 견으로 짠 겉옷[絳紗袍]을 입고 큰 홀[大珪]을 쥐고 조회를 주관하였고 [죄인을] 두루 사면했으며 진국(晉國)을 고쳐 대요국(大遼國)이라 하고 개운(開運) 4년을 회동(會同) 10년(947)으로 하였다." 延壽見晉衰而天下亂, 嘗주 001有意窺中國, 而德光亦嘗許延壽滅晉而立之. 延壽得晉書, 僞爲好辭報晉, 言身陷虜주 002思歸, 約晉發兵爲應. 而德光將高牟翰亦詐以瀛州降晉, 晉君臣皆喜. 三年七月, 遣杜重威·李守貞·張彥澤等出兵, 爲延壽應, 兵趨瀛州, 牟翰空城而去. 晉軍至城下, 見城門皆啓, 疑有伏兵, 不敢入. 遣梁漢璋追牟翰及之, 漢璋戰死. 重威等軍屯武強. 德光聞晉出兵, 乃入寇주 003 鎭州. 重威西屯中渡, 與德光夾水而軍. 德光分兵, 並西山出晉軍後, 攻破欒城縣, 縣有騎軍千人, 皆降於虜주 004. 德光每獲晉人, 刺其面, 文曰 「奉敕不殺」, 縱以南歸. 重威等被圍糧絕, 遂舉軍降. 德光喜, 謂趙延壽曰: 「所得漢兒皆與爾.」 因以龍鳳赭袍賜之, 使衣以撫晉軍, 亦以赭袍賜重威. 遣傅住兒 주 005監張彥澤將騎二千, 先入京師. 晉 出帝與太后爲降表, 自陳過咎. 德光遣解里以手詔賜帝曰: 「孫兒但勿憂, 管取一喫飯處.」 德光將至京師, 有司請以法駕奉迎, 德光曰: 「吾躬擐甲冑, 以定中原, 太常之儀, 不暇顧也.」 止而不用. 出帝與太后出郊奉迎, 德光辭不見, 曰: 「豈有兩天子相見于주 006道路邪!」 四年正月丁亥朔旦, 晉文武百官, 班于都城北, 望帝拜辭, 素服紗帽以待. 德光被甲衣貂주 007帽, 立馬于高岡, 百官俯伏待罪. 德光入自封丘門 주 008, 登城樓, 遣通事宣言諭衆曰: 「我亦人也, 可無懼. 我本無心至此, 漢兵引我來爾.」 遂入晉宮, 宮中嬪妓迎謁, 皆不顧, 夕出宿于赤岡. 封出帝負義侯, 遷于黃龍府. 癸巳, 入居晉宮, 以契丹守諸門, 門廡殿廷주 009皆磔犬掛皮, 以爲猒주 010勝. 甲午, 德光胡주 011服視朝于廣政殿. 乙未, 被中國冠服, 百官常參, 起居如晉儀, 而氈주 012裘左袵주 013, 胡주 014馬奚車, 羅列階陛, 晉人俛首不敢仰視. 二月丁巳주 015朔, 金吾六軍·殿中省仗·太常樂舞陳于廷, 德光冠通天冠, 服絳紗袍, 執大珪以視朝, 大赦, 改晉國爲大遼國, 開運四年爲會同十年.


_오대사 거란전






거란 2대 대칸 덕광이 이랴 이랴 최고의 수비는 침략이다 이랴 이랴하며 투구 갑옷을 입고 전장을 이리저리 광개토처럼


종횡무진하며


연개소문의 고연수의 한자 연수랑 똑같지만 성씨는 조씨인 조연수라는 한족을 길잡이로 삼아 이랴 이랴하며


화친과 전쟁 양면 전술로 이랴이랴해서 결국 중원을 정복함.




몽골 모자랑 갑옷 입고 척척 중원의 후진 천자 수도로 들어오고,


궁궐 계단 섬돌들에 오랑캐들의 의복들과 수레들을 진열해놓고 껄껄거리고


한뿌 코스프레도 하면서 중국 전통 행사에도 참여하고 껄껄함.




광개토,연개소문,대조영,대무예 그 누구도 해내지못한 중원 정벌을 고구려의 속국 비려의 후손 거란이 해냄. 




게다가 거란은 고구려의 후예를 자칭하였으니 고구려 백제 이 부여 종족의 원수는 거란이 값음.




이 시절 거란은 중국이랑 싸우느라 너무 바빠서 고려쪽은 신경도 안 씀.


당시 고려의 황제(?)는 왕건의 아들이자 고려의 3대 왕인 정종이었다. 제국의 아침 사극의 그 마루오까 경부 배우가 정종을 연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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