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 본명이 아만阿滿인데. 위만조선 자손인가?
삼국지 조조 본명이 아만阿滿인데. 위만조선 자손인가?
삼국지 조조 본명이 아만阿滿인데. 위만조선 자손인가?
위만조선 말로 '나'는 곧 아阿이고 (삼국지 동이전 마한진한변한 편)
만滿은 위만조선의 태조의 이름이다.(사마천 사기 조선전)
조조는 고조선 자손인가?
조조는 한나라 환관 조(曺)씨 가문에 입양된 자다.
조조의 본래 성은 하후씨(夏后氏)다. 하후씨의 선대는 북방으로 가서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고
[사기 흉노전]에 나온다.
조조의 선대가 위만조선의 유민인데. 중국에 끌려와서 살다보니 성씨를 하후씨라고 창씨개명한걸지도 모른다.
위만조선은 흉노의 왼팔이라고 중국 기록에 나온다. 흉노와 인연이 있다보니 하후씨로 창씨개명한걸지도 모른다.
사마천 사기 보면 위만조선의 태조의 이름 만滿만 적지. 성씨는 적지 않음.
위만은 연나라 땅에 사는 조선 사람이거나 고조선이랑 비슷한 혈통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고, 위만조선 연맹의 한 축으로 있다가 한 무제에게 토벌되어
현토군 고구려현이 설치되어 현토군 고구려현의 속국이 되었는데.(후한서 고구려전)
[삼국지 동이전]을 보건대, 고구려 어로 '위'는 '계승한다,뒤를 잇는다,닮았다'란 뜻으로
'위만'이란 말에서 '위'는 성씨가 아니라 닮았다 계승한다는 뜻으로
'위만'은 곧 람세스 1세,람세스 2세의 느낌처럼 '만滿 2세'라고 해석해야 하니
이 말은 즉 위만 이전에 요서 고조선이나 요동 고조선의 왕으로 '만滿'이란 자가 이미 있었고.
위만조선의 태조인 위만은 그 선대의 만滿을 잇는 자라고 해석해야할 수도 있다.
사마천 사기와 한서 지리지의 주석들을 보면 요동군 험독현은 본래 조선 왕 만(滿)의 수도였다고 나온다.
근데 위만조선은 낙랑군의 조선현을 수도로 삼았을 뿐, 요동군 일대에는 지배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고로 요동군 험독현을 수도로 삼았다는 조선 왕 만(滿)은 위만조선의 1대 왕인 위만이 아니라
위만의 선대에 있었던 요동의 고조선 왕일 수 있다.
삼국유사 고조선 편은 충격적이게도 위(魏)나라의 역사서인 '위서(魏書)'에 "2천년 전, 요 임금 때에 단군왕검이란 자가 고조선을 세웠다"고
적고 있고,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는 위만을 한자로 적을 때 삼국지 동이전과는 달리 '위만(衛滿)'이라 적지 않고, '위만(魏滿)'이라고 적어 위나라 '위(魏)'를 적고 있다.
이렇게 적는건 일연 개인이 맘대로 한 것이 아니라 삼국유사 고조선 부여 고구려 부분의 편찬에 상당 부분 활용된 '고기(古記 : 옛 기록이란 뜻이다.)'라는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는거 같은데.
이 '고기(古記)'란 기록이 도대체 누가 작성했고, 어떻게 전해져왔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다만 '고기(古記)'가 고조선,고구려 중심으로 편찬되었고 그 주 무대가 고려의 제2수도인 서경(西京) 즉 오늘날의 북한 평양이라는 부분은 매우
큰 힌트를 줄 수도 있다.
왜냐면 궁예의 고려 건국 당시 궁예의 외척 세력이었던 신천 강씨 호족이 패서 호족 즉 고구려 땅의 힘센 호족 세력이고
고려 목종,현종 당시 서경의 호족 세력의 대장으로 '강조'가 있었고 그 강조가 신천 강씨 출신이라는 점 이런걸 고려한다면
고기는 신천 강씨 혹은 패서 호족들 사이에 전해오는 옛날부터의 유서 깊은 기록이고
고려 왕실이 패서 호족 세력을 숙청하고 중앙집권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고기(古記)'의 진정한 편찬자,전승자에 대한 정보는 기밀에 부쳐지고
'고기(古記)'는 한동안 창고에 쳐박힌 신세가 되다가 서기 12세기 김부식, 서기 13세기 일연 때 와서야 삼국사기,삼국유사로서 겨우 빛을 보게 된 것이
아닐까?
근데 도대체 삼국유사는 왜 위만을 조조의 위나라 위(魏)의 위만(魏滿)으로 적는단 말인가. 정녕 조조는 위만조선 유민의 후손이란 말인가?
혹시 황건적은 고조선 유민 세력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거대한 반란이 아니었을까?
조조가 산동반도 황건적을 청주병(靑州兵)으로 삼아서 산동반도의 호족들을 학살한 것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산동반도 해적들에 대한 복수극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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